지금 함께 일하는 팀원 15명 중 6명이 여성이다. 언젠가 팀에 여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절반도 안되는데 왜 많다고 하지. 여전히 각 팀의 수장은 남성 비중이 압도적이다. 반박할 만한 말을 고르지 못하고, 해소되지 않은 마음을 안고 있다가 나름 돌파구를 찾기 위해 현재 활동 중인 여성건축가를 추적하기로 했다. 출발점이 되어준 책은 ‘SPACE of W-Architects(2017, 도서출판사 주먹구구)’과 ‘빌딩롤모델즈-여성이 말하는 건축(2018,프로파간다)’이었다. 책이 출간되고 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차별과 고정관념은 공고하다. 디자인변혁정의 2주차 텍스트였던 'The Black Experience in Graphic Design: 1968 and 2020(흑인이 경험하는 그래픽 디자인계: 1968년과 2020년)'에서 읽었던 것처럼, 1968년의 차별이 2020년에 읽어도 변함없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서술하는 여러 인터뷰이들의 말처럼, 여전히 과거의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계속해서 제자리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 5000만원 이하의 소규모 설계용역을 여성수의계약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소규모 설계용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여성건축가의 추적을 위해 그들의 이름과 소속을 정리해보았다. 우선 두 권의 도서에서 다루고 있는 여성건축가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강권정예(정예씨 출판사) 강미선(이화여자대학교) 강예린(건축사사무소SoA) 김사라, 강소진(다이아거날써츠) 김용미(금성건축) 김정임(서로아키텍츠) 김하나(서울소셜스탠다드) 김희옥(ATEC 건축사사무소) 박영순(한국여성건축가협회) 신혜원(로컬디자인) 소정당협동조합 이선영(서울시립대학교) 이아영(희림건축) 이은경(EMA건축) 이주영(G/O Architecture) 이태경(이태경건축연구소) 이현영(국립현대미술관) 임미정(stpmj) 임진영(오픈하우스서울)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정수진(SIE Architecture) 정현아(디아건축) 조윤희(구보건축) 진효숙(건축사진가) 조재원(공일스튜디오) 한기영(간삼건축) 황지은(서울시립대학교)
작년인 2022년, '말하는 건축가'와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촬영한 정재은 영화감독의 작업으로 목천건축문화재단 유튜브 채널에 ‘원하는 것에 다가가는 방법들’이라는 시리즈로 여성건축가들이 호명되었다. 황지은, 조재원, 이은경, 정수진, 김정임, 이태경, 정현아, 지순, 전보림/이승환, 강예린/이치훈의 11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빌딩롤모델즈에서 인터뷰를 했던 건축가 비중이 높다. 신문기사 또는 영상, 홈페이지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보가 제각기 다른데, 인터뷰 영상을 통해서 각자의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좋았고 지난 시간의 궤적을 기록하기에도 좋았다.
여성건축가들을 리스트업하면서, 문득 스스로 공부한다고/하겠다고 리스트업 해둔 건축가와 도서 목록의 저자 대부분이 서구 백인 남성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탈리아의 건축가인 카를로 스카르파, 지금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포르투갈 건축가인 에두아르도 소토 드 모라까지. 전에는 배우려고 리스트업한 건축가 목록에 남성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단순히 하나의 사실로만 수용했다. 사실이 그런 거라고. 왜 여성건축가의 목록은 없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알게 된 후에는 읽고 있는 책에서, 보고 있는 영상에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직면한다. 지금 읽고 있는 번역책은 짧은 4개의 단편모음집인데, 여기서도 여성번역자는 한명 뿐이다. 마치 알쓸인잡 패널 비율처럼 여성의 비중은 25%를 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반대항의 작업으로, 한국여성건축가들의 작업과 발자취를 꾸준히 따라가고, 기록하려고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제도적인 전제조건으로 인해 피해받지 않기를 바라면서.